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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자가주택의 현실 (수납, 유지관리, 온열환경)

by sunny's sunnyday 2026. 3. 13.

건축가들이 직접 설계해서 사는 집은 사진으로 볼 때는 정말 멋집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시카고 주택부터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까지, 건축사에 길이 남을 명작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저는 실무를 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건축가의 집이 멋있는 것과 그 집에서 실제로 편하게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는 점입니다. 잡지에 실린 사진 속 공간은 비어 있어서 아름답지만, 막상 사람이 살기 시작하면 청소도구, 계절 가전, 아이 물건, 택배 박스가 쌓이면서 금방 흐트러집니다.

수납장을 배치한 거실 인테리어

수납 설계가 약한 건축가 주택

건축가들이 자기 집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빠뜨리는 부분이 수납입니다. 여기서 수납이란 단순히 옷장과 신발장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전반에서 발생하는 온갖 물건들을 체계적으로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뜻합니다(출처: 국토교통부 주거실태조사). 제가 직접 설계한 작은 상업 건물에서도 이 문제를 경험했습니다. 초기에는 깔끔하고 미니멀한 공간을 원했지만, 실제로 운영이 시작되자 청소 도구함, 소모품 보관함, 서류 캐비닛 등이 필요해졌고, 결국 공간 곳곳에 임시방편으로 수납장을 추가해야 했습니다.

특히 주택은 아파트보다 수납 계획이 더 세밀해야 합니다. 아파트는 평면 구조가 정형화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 수납 공간이 기본적으로 확보되지만, 주택은 건축가의 디자인 의도에 따라 공간이 자유롭게 구성되기 때문에 수납을 의도적으로 계획하지 않으면 부족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집들을 보면 천장이 낮고 복도가 좁은 경우가 많은데, 이는 수평성과 인간 규모의 친밀감을 강조한 설계 철학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공간 구성은 대형 수납장이나 붙박이장을 설치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제가 진행했던 주택 프로젝트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건축주는 처음에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살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입주 후 6개월이 지나자 창고가 부족하다는 불만이 나왔습니다. 특히 아이가 있는 가정이라면 유모차, 자전거, 캠핑 장비, 계절 의류 등 부피가 큰 물건들이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초기 설계 단계에서부터 이런 변화를 예상하고 충분한 수납 공간을 확보해야 합니다.

유지관리 비용의 함정

건축가 주택의 두 번째 약점은 유지관리입니다. 큰 창, 높은 천장, 맞춤 제작 목재, 특수 금속, 노출 콘크리트, 벽돌 바닥은 모두 사진으로 보면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청소, 보수, 오염 관리, 변색, 균열 대응까지 생각하면 비용과 손이 엄청나게 많이 갑니다. 저는 예전에 제가 설계한 작은 상업 건물의 주차장 바닥을 벽돌로 시공한 적이 있습니다.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처럼 헤링본(herringbone) 패턴으로 벽돌을 깔면 외부 같은 느낌을 주면서도 고급스러워 보일 것 같았습니다.

헤링본이란 물고기 뼈를 닮은 지그재그 패턴으로 벽돌이나 타일을 시공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런데 막상 시공을 진행하고 나니 추가 공사비로 3천만 원이 나왔습니다. 미리 물어보고 진행했어야 했는데, 상의도 없이 벽돌 바닥을 시공해 놓고 나중에 추가 비용을 알려주더라고요. 솔직히 이 경험은 제게 큰 교훈이 되었습니다. 디자인적으로 멋있다고 무조건 따라 하면 안 되고, 유지관리와 시공 비용까지 철저히 계산해야 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특히 콘크리트나 금속 같은 산업 소재를 주거 공간에 사용하면 초기 비용뿐 아니라 장기적인 유지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노출 콘크리트는 균열이 생기면 보수가 어렵고, 큰 유리창은 청소 비용이 많이 들며, 맞춤 제작 목재는 변형이나 변색이 생기면 교체 부품을 구하기 힘듭니다. 자기 집일수록 처음의 이미지보다 5년 뒤, 10년 뒤 관리 상태를 상상하고 결정해야 합니다.

온열환경과 생활 소음 문제

건축가 주택의 세 번째 약점은 온열환경과 생활 소음입니다. 높은 천장은 공간감을 주지만 겨울에는 난방 손실이 크고, 큰 유리는 개방감을 주지만 여름에는 복사열과 눈부심이 문제입니다. 특히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에서는 단열과 차양 계획이 매우 중요합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지어진 헤메로스코피움 하우스처럼 프리캐스트 콘크리트(PC 콘크리트) 구조를 그대로 노출시킨 디자인은 따뜻한 지중해 기후에서는 가능하지만, 한국에서 그대로 적용하면 겨울에 살 수 없을 정도로 춥습니다.

프리캐스트 콘크리트란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콘크리트 부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공법을 말하며, 주로 고속도로 교량이나 대형 건축물에 사용됩니다. 문제는 이런 구조재가 그대로 실내에 노출되면 열교(thermal bridge)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열교란 단열재가 끊어진 부분을 통해 열이 빠져나가는 현상을 의미하며, 겨울철 난방비를 급격히 증가시키고 결로와 곰팡이의 원인이 됩니다(출처: 한국에너지공단).

제 경험상 콘크리트와 유리, 금속 중심의 미니멀한 집은 사진은 좋은데 실제로는 울림이 크고 차갑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커튼, 러그, 패브릭 패널, 목재, 간접조명 같은 요소가 생각보다 훨씬 더 중요합니다. 리카르도 보필의 시멘트 공장 리노베이션 주택을 보면 거실에 긴 흰색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데, 이 커튼이 공간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꿉니다. 만약 저 커튼이 없었다면 그 공간은 꽤 황량하고 삭막했을 겁니다. 커튼이 정말 많은 역할을 합니다. 원단의 부드러움과 은은하게 스며드는 빛이 건물의 산업적인 느낌과 아름다운 대비를 이룹니다.

큰 공간은 구조가 아니라 결국 직물과 빛이 사람 살 수 있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부분을 깨달았고, 이후부터는 하드한 재료와 소프트한 재료의 균형을 항상 염두에 두고 설계하게 되었습니다.

건축가 주택에서 배울 실용적 원칙

건축가들의 자가 주택은 멋있지만 그대로 따라 지을 대상은 아닙니다. 대신 거기서 추출할 수 있는 원칙을 번역해서 적용해야 합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서 배울 것은 낮은 천장 그 자체가 아니라 압축과 개방의 대비입니다. 좁고 낮은 복도를 지나 넓고 높은 거실로 들어가면 공간감이 극대화됩니다. 알바 알토에게서 배울 것은 평범한 평면이 아니라 재료와 빛으로 온도를 만드는 능력입니다. 핀란드산 자작나무와 부드러운 간접광이 만들어내는 따뜻한 분위기는 평면도만 봐서는 절대 알 수 없습니다.

르 코르뷔지에의 로크브륀-카프-마르탱 오두막에서 배울 것은 작게 짓기가 아니라 필요한 것만 남기는 밀도 높은 배치입니다. 3.66m × 3.66m × 2.26m라는 최소한의 공간 안에 침대, 책상, 싱크대, 창문, 수납이 모두 들어갑니다. 필립 존슨의 글라스 하우스에서 배울 것은 유리집 그 자체가 아니라 풍경을 실내로 끌어들이는 프레임 감각입니다. 창문의 위치와 크기, 방향이 어떻게 공간의 질을 바꾸는지 보여주는 교과서입니다.

헤메로스코피움 하우스에서 배울 것은 과감한 구조가 아니라 집의 성격을 만드는 구조적 아이디어가 얼마나 강력한지입니다. 20톤짜리 돌 하나가 전체 구조를 지탱하는 원리는 시소처럼 힘의 균형을 이용한 것인데, 이런 발상 자체가 건축을 흥미롭게 만듭니다. 리카르도 보필에게서 배울 것은 폐공장 리노베이션보다도 이질적인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감각입니다. 시멘트 공장이라는 산업 시설을 주거 공간으로 바꾸면서 둘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식은 정말 대단합니다.

정리하면, 건축가의 집에서 배워야 할 것은 표면적인 스타일이 아니라 그 안에 숨어 있는 공간 설계의 원리입니다. 수납, 유지관리, 온열환경 같은 실용적인 부분을 무시하고 멋만 따라 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됩니다. 저도 실무를 하면서 이런 실수를 여러 번 겪었고, 그 과정에서 건축은 결국 사람이 살기 위한 것이라는 기본을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땅을 좀 가지고 있는데, 아파트에 사는 건 좀 자존심 상하는 일 같기도 하고, 집에서 살아야 되는데, 진짜. 하지만 막상 짓고 나면 관리가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설계 단계에서부터 5년 후, 10년 후를 생각하고 계획해야 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4CB5OAgUSEw&t=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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