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세대 건물 공사를 하면서 욕실마다 바이오 실리콘으로 코킹을 했습니다. 바이오 실리콘은 항균 성분이 포함된 제품이라 곰팡이에 강하다고 알려져 있고, 욕실 시공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뒤 한 집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곰팡이가 너무 심하게 생긴다며 실리콘을 다시 쏴달라는 거였습니다.
현장에 가보니 원인이 바로 보였습니다. 환풍기를 한 번도 안 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창문도 없는 화장실이었습니다. 아무리 바이오 실리콘이라도 환기가 전혀 안 되는 환경에서 습기가 계속 머물면 곰팡이가 생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이오 실리콘의 항균 기능은 곰팡이 발생을 억제해 주는 것이지, 완전히 차단해 주는 건 아니었습니다. 결국 실리콘을 다시 코킹 하면서 환기를 반드시 시켜야 한다고 안내했고, 그 뒤로는 잘 관리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그때 배운 게 있습니다. 실리콘은 시공도 중요하지만 사용자의 관리에 따라 수명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실리콘과 코킹의 종류별 특성, 색상 선택, 공간에 맞는 시공 기준을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실리콘 종류별 특성, 이름은 비슷해도 용도가 완전히 달랐습니다
실리콘은 크게 아세트산형, 무초산형, 바이오(항균) 형으로 나뉘었습니다. 이름만 들어서는 차이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종류에 따라 쓸 수 있는 곳과 쓰면 안 되는 곳이 분명히 달랐습니다.
아세트산형 실리콘(Acetoxy Silicone)은 가장 보편적으로 쓰이는 실리콘이었습니다. 경화될 때 식초 냄새와 비슷한 초산 냄새가 나는 게 특징이었습니다. 유리, 도자기, 타일 같은 비금속 소재에 접착력이 좋고 가격이 저렴해서 창호 유리 시공이나 일반 코킹에 많이 쓰였습니다. 단, 금속에 닿으면 부식을 일으킬 수 있어서 금속 프레임이나 스테인리스 주변에는 쓰면 안 됐습니다. 대리석이나 천연석에도 변색을 일으킬 수 있어서 석재 주변에는 무초산형을 써야 했습니다.
무초산형 실리콘(Neutral Cure Silicone)은 경화 과정에서 초산이 발생하지 않는 실리콘이었습니다. 냄새가 거의 없고 금속이나 석재에 부식이나 변색을 일으키지 않아서 소재를 가리지 않고 쓸 수 있었습니다. 아세트산형보다 가격이 높았지만 적용 범위가 넓어서 현장에서는 범용성이 가장 좋은 실리콘이었습니다. 창호 주변, 외부 코킹, 금속 프레임 접합부에 주로 사용했습니다. 접합 소재에 맞지 않는 실리콘을 쓰면 접착 불량이나 소재 손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고한 바 있고, 실제로 대리석 주변에 아세트산형을 잘못 써서 변색이 생긴 현장을 본 뒤로는 소재를 먼저 확인하고 실리콘 종류를 정하는 걸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실란트란 건축에서 이음새나 틈새를 메워 방수 및 기밀 성능을 확보하는 충전재의 총칭으로, 실리콘은 실란트의 한 종류였습니다.
바이오 실리콘(Bio Silicone)은 항균·항곰팡이 성분이 포함된 실리콘이었습니다. 욕실, 주방 싱크대 주변처럼 습기가 상시 발생하는 공간에서 곰팡이 발생을 억제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제품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다세대 건물 사례처럼 바이오 실리콘도 만능은 아니었습니다. 항균 성분이 곰팡이 발생 속도를 늦춰주는 것이지 완전히 막아주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환기가 안 되는 환경에서는 결국 곰팡이가 생겼습니다. 바이오 실리콘을 시공하더라도 사용 후 환풍기를 반드시 돌리고 가능하면 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는 게 실리콘 수명을 늘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
실리콘 색상 선택, 줄눈과 맞추면 완성도가 달라졌습니다
실리콘 색상은 과거에는 투명과 백색 두 가지가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아덱스(Ardex) 같은 브랜드에서 다양한 색상의 실리콘 제품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줄눈 색상과 비슷한 실리콘을 쓰면 타일과 실리콘의 경계가 자연스러워져서 시공 완성도가 눈에 띄게 올라갔습니다.
직접 집 욕실에 줄눈 색상과 맞춘 실리콘을 시공해 봤는데 결과가 아주 좋았습니다. 기존에 백색 실리콘을 쓰던 것과 비교하면 줄눈과 실리콘이 하나로 이어져 보이면서 훨씬 깔끔한 인상을 줬습니다. 다만 색상 실리콘을 선택할 때는 해당 제품이 욕실용인지, 항균 기능이 포함되어 있는지를 반드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색상이 다양한 제품 중에는 일반 코킹용이어서 욕실 습기 환경에 맞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투명이나 반투명 실리콘을 쓸 때는 시간이 지나면서 색상이 변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했습니다. 투명 실리콘은 처음에는 깔끔해 보이지만 자외선이나 습기에 장기간 노출되면 누렇게 변색되는 황변(Yellowing) 현상이 생겼습니다. 황변이란 투명하거나 밝은 색상의 소재가 시간이 지나면서 노랗게 변하는 현상으로, 실리콘뿐 아니라 플라스틱이나 접착제에서도 흔히 나타났습니다. 해가 잘 드는 창호 주변에 투명 실리콘을 쓰면 1~2년 안에 누렇게 변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런 위치에는 처음부터 백색이나 회색 계열을 쓰는 게 변색 후에도 덜 눈에 띄었습니다.
줄눈(Grout)과 실리콘의 역할도 구분해야 했습니다. 줄눈은 타일과 타일 사이를 시멘트 계열 재료로 채우는 것이고, 실리콘은 타일과 벽체, 타일과 바닥, 타일과 욕조 같은 서로 다른 소재가 만나는 접합부에 쓰는 것이었습니다. 줄눈 위치에 실리콘을 쓰거나 접합부에 줄눈재를 쓰면 나중에 갈라지거나 들뜨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접합부는 건물이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벌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는 곳이라, 탄성이 있는 실리콘이어야 그 움직임을 흡수할 수 있었습니다.
공간별 실리콘 시공 기준, 어디에 뭘 써야 오래갔습니다
실리콘 종류와 색상을 정했으면 공간별로 어디에 어떻게 시공할지가 남았습니다. 같은 실리콘이라도 시공 위치와 방법에 따라 수명이 달라졌습니다.
욕실은 바이오 실리콘이 기본이었습니다. 욕조와 타일이 만나는 접합부, 세면대와 벽면 사이, 양변기 하단 둘레가 주요 시공 위치였습니다. 시공 전에 기존 실리콘을 완전히 제거하고 접합부 표면을 깨끗하게 닦아내야 했습니다. 기존 실리콘 위에 덧바르면 접착력이 떨어져서 금방 들뜨거나 벌어졌습니다. 시공 후에는 최소 24시간 동안 물이 닿지 않게 해야 경화가 제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실리콘 시공 후 경화가 안 된 상태에서 물이 닿으면 접착 불량으로 이어집니다. 국토교통부 건축공사 표준시방서에서도 경화 시간 확보를 규정하고 있고, 욕실 시공할 때는 항상 클라이언트에게 최소 24시간은 물 사용을 자제해 달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시공 후에도 환풍기를 틀고 환기를 시키는 습관이 실리콘 수명을 가장 크게 좌우했습니다.
주방은 싱크대 상판과 벽면 사이, 싱크대 상판과 하부장 접합부가 주요 시공 위치였습니다. 주방은 기름과 세제에 반복 노출되는 환경이라 내유성(Oil Resistance) 이 있는 제품을 쓰는 게 좋았습니다. 내유성이란 기름이나 유지류에 의해 실리콘이 팽윤 하거나 물러지지 않는 성질이었습니다. 일반 실리콘은 기름에 장기간 노출되면 물러져서 접착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주방용으로 나온 전용 실리콘이나 무초산형 실리콘 중 내유성이 표기된 제품을 선택하면 안전했습니다.
창호 주변은 무초산형 실리콘이 기본이었습니다. 창호 프레임은 대부분 알루미늄이나 PVC 소재인데, 아세트산형 실리콘을 쓰면 알루미늄에 부식이 생길 수 있었습니다. 외부에 노출되는 창호 코킹은 자외선과 온도 변화에 견딜 수 있는 내후성(Weatherability) 이 높은 제품을 써야 했습니다. 내후성이란 자외선, 비, 온도 변화 같은 외부 환경에 의해 소재가 열화 되지 않는 성질이었습니다. 내후성이 낮은 제품을 외부에 쓰면 1~2년 안에 갈라지거나 떨어져서 다시 코킹해야 했습니다.
실리콘은 인테리어에서 가장 눈에 안 띄는 자재 중 하나이지만, 잘못 쓰거나 관리를 안 하면 가장 먼저 문제가 드러나는 자재이기도 했습니다. 종류를 공간에 맞게 고르고, 시공 후 경화 시간을 지키고, 특히 욕실에서는 환기를 꾸준히 해주는 것이 실리콘을 오래 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