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립수전이 예뻐서 좋아했던 적이 있습니다. 벽 안에 배관과 밸브가 숨겨지고 밖으로는 손잡이와 토출구만 나오니까 욕실이 깔끔하게 정리되는 느낌이었습니다. 디자인만 놓고 보면 가장 세련된 수전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입 매립수전을 시공하면서 생각지 못한 문제를 겪었습니다. 수입 제품이다 보니 한국에서 사용하는 배관 규격과 맞지 않았습니다. 결국 배관을 커스텀해서 연결해야 했습니다. 시공은 어떻게든 마무리했는데, 나중에 AS를 받으려고 하니 또 문제가 생겼습니다. 배관을 커스텀한 부분 때문에 수전만 교체하는 게 아니라 일부 배관 공사를 다시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수전을 고를 때 디자인만 보면 안 된다는 걸 배웠습니다. 배관 호환성, AS 편의성, 시공 조건까지 함께 봐야 나중에 후회가 없었습니다. 오늘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욕실 수전 종류별 특성과 선택 기준을 정리해드리겠습니다.

수전 종류별 특성, 설치 방식에 따라 장단점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욕실 수전은 설치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뉘었습니다. 매립수전, 벽수전, 스탠드수전. 이름만 들어서는 차이를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데, 설치 방식이 다르면 시공 조건, 유지보수, 비용까지 전부 달라졌습니다.
매립수전(Concealed Faucet)은 배관과 밸브 본체가 벽 안에 숨겨지고, 손잡이와 토출구만 벽 밖으로 나오는 방식이었습니다. 노출되는 부분이 최소화되기 때문에 깔끔하고 미니멀한 디자인이 가장 큰 장점이었습니다. 최근 모던한 욕실 인테리어에서 많이 선택되는 방식이었습니다.
단점은 시공 조건이 까다롭다는 점이었습니다. 벽 안에 밸브 본체가 들어갈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벽체 두께가 충분해야 했습니다. 욕실 리모델링 글에서도 말씀드린 것처럼, 세면대 뒤 벽이 너무 얇으면 벽체를 앞으로 늘려서 시공해야 했고, 그만큼 욕실 내부 공간이 좁아졌습니다. 신축할 때는 설계 단계에서 미리 계획하면 수월하게 설치할 수 있었지만, 리모델링에서는 기존 배관 주변을 매입을 위해 수정해야 해서 작업이 더 걸렸습니다.
벽수전(Wall-Mounted Faucet)은 배관이 벽면을 통해 나오고 수전 본체가 벽면에 직접 부착되는 방식이었습니다. 매립수전처럼 벽 안에 밸브가 숨겨지지는 않지만, 세면대 위에 수전이 올라가지 않아서 세면대 주변 청소가 편했습니다. 매립수전보다 시공이 간편하고 AS도 쉬웠습니다. 수전 본체가 벽 밖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교체하거나 수리할 때 벽을 뜯을 필요가 없었습니다.
스탠드수전(Deck-Mounted Faucet)은 세면대 위에 직접 설치되는 가장 일반적인 방식이었습니다. 국내 아파트 욕실 대부분이 이 방식이었습니다. 배관이 세면대 아래로 연결되기 때문에 벽체 두께와 관계없이 설치할 수 있었고, 교체도 가장 간편했습니다. 단점은 세면대 위에 수전이 올라가면서 수전 주변에 물때가 쌓이기 쉬웠고, 청소할 면적이 늘어난다는 점이었습니다.
매립수전 시공 시 반드시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었습니다
매립수전을 선택하시는 분들이 늘고 있는데, 시공 전에 반드시 확인해야 할 포인트가 몇 가지 있었습니다.
첫째, 배관 규격 호환성이었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수입 매립수전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배관 규격과 맞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국내 배관은 주로 15A(1/2인치) 규격을 사용하는데, 유럽이나 일본 제품은 규격이 다를 수 있었습니다. 규격이 맞지 않으면 어댑터를 쓰거나 배관을 커스텀해야 했는데, 이렇게 커스텀한 부분은 나중에 수전을 교체할 때 문제가 됐습니다. 표준 규격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거나, 수입 제품을 쓰더라도 국내 배관과 호환되는지 반드시 확인해야 했습니다.
둘째, AS 편의성이었습니다. 매립수전의 가장 큰 단점이 AS가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밸브 본체가 벽 안에 있기 때문에 밸브에 문제가 생기면 벽 마감을 뜯어야 접근할 수 있었습니다. 타일까지 다시 깨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립수전을 시공할 때는 반드시 점검구(Access Panel)를 함께 설치하는 것을 권했습니다. 점검구란 벽면에 설치하는 개폐 가능한 패널로, 벽 안의 배관이나 밸브에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구조였습니다. 점검구가 있으면 타일을 깨지 않고도 밸브를 점검하거나 교체할 수 있었습니다.
셋째, 벽체 두께 확인이었습니다. 매립수전 밸브 본체의 매입 깊이는 제품마다 다르지만 보통 70~120mm 정도의 벽 두께가 필요했습니다. 리모델링 시 기존 벽체가 이보다 얇으면 벽을 늘려야 했습니다. 국토교통부 건축설비 기준에서도 급수·급탕 배관의 매립 시 벽체 두께와 배관 보호 기준을 규정하고 있고, 현장에서도 벽 두께를 확인하지 않고 매립수전을 주문했다가 설치가 안 되는 경우를 본 적이 있습니다.
넷째, 신축과 리모델링의 시공 차이였습니다. 신축에서는 설계 단계에서 매립수전 위치를 정하고 배관을 미리 벽 안에 넣어두면 시공이 수월했습니다. 그런데 리모델링에서는 기존 벽체를 열고 배관을 수정해야 하는 작업이 추가됐습니다. 기존 배관 위치와 새 수전 위치가 맞지 않으면 배관 이설까지 필요했고, 그만큼 시간과 비용이 더 들었습니다.
공간별 수전 선택 기준, 용도에 맞게 골라야 후회가 없었습니다
수전은 욕실 안에서도 설치 위치에 따라 적합한 종류가 달랐습니다. 세면대, 샤워, 욕조 각각의 용도에 맞는 수전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세면대 수전은 세 가지 방식 모두 적용 가능했습니다. 디자인을 우선으로 한다면 매립수전이나 벽수전이 깔끔했고, 실용성과 AS 편의성을 우선으로 한다면 스탠드수전이 무난했습니다. 세면대 수전에서 한 가지 더 확인할 것은 토수구(Spout) 높이와 길이였습니다. 토수구란 물이 나오는 부분을 말하는데, 토수구가 너무 짧으면 세면대 가장자리에서 물이 떨어져서 주변에 물이 튀었고, 너무 높으면 물 세기에 따라 세면대 밖으로 물이 튈 수 있었습니다. 세면대 볼 크기에 맞는 토수구 길이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샤워 수전은 매립수전이 가장 많이 선택되는 위치였습니다. 샤워 공간은 벽면이 타일로 마감되어 있고 수전 주변에 물이 직접 닿기 때문에, 노출된 부분이 적을수록 물때 관리가 편했습니다. 매립수전으로 설치하면 벽면에 손잡이와 헤드 연결부만 남아서 깔끔했습니다. 다만 샤워 매립수전은 온도 조절 방식을 확인해야 했습니다. 서모스태틱(Thermostatic) 방식이란 설정한 온도를 자동으로 유지해주는 온도 조절 밸브로, 샤워 중 갑자기 뜨거운 물이 나오는 것을 방지해줬습니다. 특히 아이나 어르신이 있는 가정에서는 안전을 위해 서모스태틱 방식을 권했습니다.
욕조 수전은 욕조 형태에 따라 선택이 달라졌습니다. 빌트인 욕조(벽에 붙어있는 욕조)에는 벽수전이나 매립수전이 적합했고, 독립형 욕조(프리스탠딩 욕조)에는 바닥에서 올라오는 플로어 스탠딩 수전(Floor Standing Faucet)이 어울렸습니다. 플로어 스탠딩 수전이란 바닥에 고정된 파이프가 위로 올라와서 욕조 위에서 물을 쏟아주는 방식의 수전으로, 독립형 욕조의 디자인을 가장 잘 살려주는 수전이었습니다. 다만 바닥 배관 작업이 필요하기 때문에 신축이나 전면 리모델링 시에만 설치가 가능했습니다.
수전 소재도 확인해야 했습니다.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가 크롬 도금(Chrome Plating)이었습니다. 크롬 도금이란 금속 표면에 크롬을 얇게 입혀서 광택과 내식성을 높이는 표면 처리 방식이었습니다. 가격이 합리적이고 관리가 쉬워서 가장 보편적이었습니다. 최근에는 무광 블랙, 골드, 브러시드 니켈 같은 다양한 마감이 나오고 있었는데, 특수 마감 제품은 크롬보다 가격이 높았고 스크래치에 민감한 경우가 있어서 관리 방법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결국 수전 선택은 디자인, 시공 조건, AS 편의성, 배관 호환성을 종합적으로 봐야 했습니다. 예쁘다고 무조건 매립수전을 선택하면 나중에 AS 때 벽을 뜯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었고, 수입 제품은 배관 규격 호환까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수전은 한번 설치하면 오래 쓰는 설비이기 때문에 처음 선택할 때 디자인과 실용성을 함께 따지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