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셋집에 살 때는 수납이 항상 부족했습니다. 옷장도 꽉 차고 신발장도 넘치고, 주방에는 쌓아둘 곳이 없어서 물건이 밖으로 나와있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이사한 집에서는 수납공간을 넉넉하게 늘려서 공사했습니다. 결과는 딱 맞았습니다. 부족하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 적정한 수납이 확보됐습니다. 지금은 여기서 더 늘리지 않게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후회한 게 있습니다. 집이 좁아서 어쩔 수 없이 슬라이딩도어 옷장을 만들었는데, 직접 써보니 너무 불편했습니다. 옷을 갈아입을 때 한쪽 문을 열면 반대쪽이 닫혀버려서 양쪽을 동시에 쓸 수가 없었습니다. 공간이 좁아서 내린 선택이었지만, 매일 쓰는 옷장이 이렇게 불편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 이후로 슬라이딩도어 옷장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면 설계에 넣지 않게 됐습니다.
수납 설계는 단순히 공간을 많이 만드는 게 아니라 매일 쓰기 편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그 경험을 바탕으로 붙박이장, 팬트리, 신발장의 수납 설계 기준을 정리해드리겠습니다.

붙박이장 설계, 여닫이냐 슬라이딩이냐보다 선반 구성이 핵심이었습니다
붙박이장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결정해야 하는 게 도어 방식이었습니다. 여닫이(Hinged Door)와 슬라이딩(Sliding Door) 두 가지가 있었는데, 직접 써본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공간이 허락하는 한 여닫이가 훨씬 편했습니다.
여닫이는 문을 완전히 열 수 있어서 내부 전체가 한눈에 보였습니다. 양쪽 문을 동시에 열고 물건을 꺼내거나 정리할 수 있어서 사용성이 좋았습니다. 단점은 문이 열리는 반경만큼 앞쪽에 여유 공간이 필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슬라이딩은 문이 옆으로 밀리기 때문에 앞쪽 공간이 필요 없어서 좁은 공간에 유리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한쪽을 열면 반대쪽이 닫히기 때문에 전체를 동시에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좁은 복도나 통로에 면한 수납장처럼 정말 공간이 안 되는 경우에만 슬라이딩을 권했습니다.
도어 방식보다 더 중요한 게 내부 선반 구성이었습니다. 소비자마다 수납하는 물건의 종류가 전부 다르기 때문에 고정 선반으로 내부를 짜면 나중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부분의 선반을 다보선반(Adjustable Shelf)으로 설계합니다. 다보선반이란 벽면에 일정 간격으로 구멍이 뚫린 채널을 설치하고, 선반 높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게 만든 가변형 선반 방식이었습니다. 물건 높이에 맞춰 선반 위치를 바꿀 수 있으니 계절마다 수납 내용물이 달라져도 대응이 가능했습니다.
고정 선반은 꼭 필요한 곳에만 사용했습니다. 무거운 물건을 올려두는 하단 선반이나 TV, 프린터처럼 위치가 고정된 기기를 받치는 선반은 두께가 두꺼운 고정 선반으로 시공했습니다. 나머지는 전부 다보선반으로 구성하는 것이 공간 활용도가 훨씬 높았습니다.
붙박이장을 설계할 때 클라이언트에게 반드시 요청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본인이 수납해야 할 물건 리스트를 미리 정리해서 알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옷이 많은지 이불이 많은지, 긴 코트를 많이 걸어야 하는지 접어서 넣는 옷이 많은지에 따라 행거 높이와 선반 비율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이 정보 없이 설계하면 입주 후에 "행거가 부족해요", "선반이 너무 높아요" 같은 불만이 나왔습니다.
팬트리와 주방 수납, 물건은 반드시 늘어난다는 전제로 설계했습니다
주방 수납은 다른 공간보다 여유를 더 많이 잡아야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주방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물건이 자꾸 늘어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처음에 딱 맞게 설계하면 1~2년 안에 수납이 부족해지는 경우를 정말 많이 봤습니다. 그래서 현재 필요한 수납보다 20~30% 정도 여유 있게 잡는 것을 기본으로 삼고 있습니다.
팬트리(Pantry)를 설계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권했습니다. 팬트리란 주방에 인접한 별도의 수납공간으로, 식자재, 조리 도구, 소형 가전 등을 보관하는 저장실이었습니다. 팬트리가 있으면 주방 카운터 위가 깨끗하게 유지되고, 자주 쓰지 않는 물건을 따로 보관할 수 있어서 주방 동선이 훨씬 효율적이었습니다.
팬트리 내부 선반도 다보선반으로 구성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식자재와 조리 도구는 크기가 제각각이기 때문에 고정 선반으로는 높이가 안 맞는 물건이 반드시 생겼습니다. 다보선반으로 하면 키가 큰 오일 병, 낮은 통조림, 넓은 그릇까지 높이에 맞게 선반을 조절할 수 있었습니다. 팬트리 문은 여닫이보다 포켓도어(Pocket Door)가 편했습니다. 포켓도어란 문짝이 벽 안으로 밀려 들어가는 방식의 문으로, 열어둔 상태에서 문이 동선을 방해하지 않아서 물건을 나르면서 드나들기 편했습니다.
주방 하부장 수납에서 가장 효과적인 구성은 서랍형이었습니다. 선반형 여닫이장은 안쪽 깊숙한 물건을 꺼내려면 허리를 숙이고 손을 뻗어야 했는데, 서랍형은 서랍 전체가 앞으로 나오기 때문에 한눈에 보이고 꺼내기도 쉬웠습니다. 다만 ㄱ자나 ㄷ자 주방의 코너 부분은 서랍보다 여닫이가 더 적합했습니다. 코너 부분에 서랍을 넣으면 옆 서랍이나 문짝과 간섭이 생겨서 열리지 않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코너에는 여닫이 문을 달고 안쪽에 회전 선반을 넣으면 죽은 공간까지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신발장 설계, 신발 높이에 맞춘 가변형 선반이 답이었습니다
신발장은 수납 가구 중에서 가변형 선반의 효과가 가장 크게 체감되는 곳이었습니다. 운동화, 구두, 부츠, 샌들은 높이가 전부 달랐기 때문입니다. 고정 선반으로 동일한 높이를 잡으면 부츠는 눕혀야 하고 샌들 위에는 공간이 남았습니다.
신발장 내부도 다보선반으로 구성하면 계절마다 선반 높이를 바꿀 수 있었습니다. 여름에는 샌들과 운동화 위주로 선반 간격을 좁게 잡아 더 많은 신발을 넣을 수 있었고, 겨울에는 부츠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선반 한두 개를 빼거나 높이를 올렸습니다.
신발장 깊이도 중요했습니다. 남성 신발 기준으로 최소 350mm, 여유 있게는 400mm 깊이를 확보해야 신발이 빠져나오지 않았습니다. 현관이 좁아서 깊이를 확보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신발을 비스듬히 수납하는 경사형 선반을 활용하면 깊이를 줄이면서도 수납량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경사형 선반(Tilted Shelf)이란 선반을 15~20도 정도 기울여서 신발을 비스듬히 세워 넣는 방식으로, 일반 수평 선반보다 깊이가 100mm 정도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신발장 하단에는 자주 신는 신발을 빼놓을 수 있는 오픈 공간을 두는 것도 좋았습니다. 매일 신는 신발을 신발장 안에 넣었다 뺐다 하는 게 번거로운 분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하단 150~200mm 정도를 비워두면 실내화나 자주 신는 운동화를 바닥에 어지럽게 두지 않고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수납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건 지금 가진 물건의 양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수납이 부족하다고 느끼시는 분들 중 상당수가 물건 자체가 과하게 많은 경우였습니다. 수납공간을 아무리 늘려도 물건이 계속 늘어나면 결국 또 부족해졌습니다. 설계 의뢰 시 본인이 반드시 수납해야 할 물건 리스트를 미리 정리해서 공유해 주시면 딱 맞는 수납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선반은 가능한 한 다보선반으로 구성하는 것을 권합니다. 생활하면서 수납 내용물은 반드시 바뀌기 때문에, 고정 선반보다 가변형 선반이 장기적으로 훨씬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습니다.